스테이블코인 시장이 이달부터 발효된 MiCA 규제로 크게 요동치고 있다. 여러 거래소가 USDT와 USDC를 상장 폐지하는 가운데, 최근에는 암호화폐 거래소 비트스탬프(Bitstamp)와 크립토닷컴(crypto.com)이 2025년 1월 31일부로 테더 USDT와 페이팔 USD 지원 중단을 공식 발표했다. 이 같은 움직임을 배경으로, 27개 EU 회원국 전역의 암호화폐 시장을 단일 규율 아래 두겠다는 이 포괄적 법안이 무엇을 노리는지 짚어본다.
MiCA, ‘암호자산시장 규제’란 무엇인가
MiCA(Markets in Crypto-Assets)는 유럽연합이 추진해 온 암호화폐 통합 규제의 정점에 있는 법안이다. 도입 이전까지 EU 내 암호화폐 사업자는 회원국별로 상이한 규제와 인가 요건을 각각 충족해야 했고, 국가마다 다른 감독 체계 탓에 사실상 규제 ‘조각 모음’ 속에서 사업을 영위해야 했다.
이처럼 파편화된 규제 환경은 사업자에게는 비용과 불확실성을, 투자자에게는 보호 공백과 위험 노출을 초래했다.
MiCA의 핵심 목표는 혁신을 저해하지 않는 선에서 소비자 보호와 시장 건전성을 확보할 수 있는 ‘표준 규제 틀’을 만드는 것이다. 규정은 EU 내 투자자와 시장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암호자산 서비스 제공자(CASP)에 적용되며, 사업자의 소재지가 EU 외부라 해도 예외가 아니다. 역외 적용을 통해 EU 시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암호화폐 활동 전반을 감독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스테이블코인 시장에 어떤 충격을 주나
MiCA에서 가장 변화 폭이 큰 분야는 단연 스테이블코인이다. 규정은 이 부문에 대해 강도 높은 요건을 제시하면서 시장 구조 자체를 재편하고 있다.
먼저 알고리즘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사실상 EU 내에서 사용이 금지된다. 법정통화나 유가증권 등 전통 자산으로 뒷받침되지 않고 알고리즘에 의존하는 구조가 금융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과거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 붕괴 사례들이 이러한 규제 기조를 강화했다.
전통적인 준비금 기반 스테이블코인에 대해서는 두 가지 범주가 적용된다. 바로 자산참조토큰(ART)과 전자화폐토큰(EMT)이다. 두 유형 모두 기초 자산 대비 1:1 비율의 고유동성 준비금을 의무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EMT 발행자는 통상 은행 등 인가된 신용기관으로, 토큰 발행 전 감독당국에 신고하고 상세한 백서를 공개해야 한다. ART 발행사는 여기에 더해 EU 내 법인을 필수적으로 두어야 하며, 백서 사전 승인 등 강화된 요건이 부과된다.
또 유럽은행감독청(EBA)이 정한 일정 기준을 충족하는 스테이블코인은 ‘중요(significant)’ 스테이블코인으로 별도 분류되며, 보다 엄격한 감독과 강화된 자본·유동성·리스크 관리 요건이 따라붙는다. 유로존 결제 시스템과 연계될 수 있는 대형 프로젝트일수록 규제 강도가 높아지는 구조다.
MiCA의 사각지대와 한계
범위가 넓다고는 해도, MiCA가 암호화폐 생태계 전 영역을 포괄하는 것은 아니다. 우선 대체불가능토큰(NFT)은 기본적으로 규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다만 사실상 동일한 성격의 토큰을 대량 발행해 ‘반(半)동질적’ 성격을 띠게 되는 경우, 일부는 일반 암호자산에 준해 규율될 여지가 있다.
탈중앙화금융(DeFi) 프로토콜, 탈중앙화자율조직(DAO), 기타 온체인 애플리케이션에 대한 처리도 여전히 난제다. MiCA는 ‘진정한 탈중앙화’에 가까운 구조에는 직접적인 적용을 피하고 있지만, 실제로 무엇을 탈중앙화로 볼 것인지는 기술적·법적 판단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 영역의 프로젝트들은 향후 규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전문 법률 자문을 거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2025년 1월, 무엇이 이미 바뀌었나
MiCA 도입은 단계별 일정에 따라 진행된다. 2025년 1월부터는 CASP를 대상으로 한 라이선스 신청 절차가 본격 개시됐다. 이는 완전한 MiCA 체제 진입을 위한 첫 번째 실질적 관문이다.
동시에 최대 18개월에 이르는 ‘유예 기간’이 제공된다. 기존 사업자는 일정 기간 현 체제를 유지하면서 새 규정에 맞춰 조직과 시스템을 정비할 수 있다. 다만 이 기간 동안 각사는 자신에게 필요한 라이선스 유형을 정의하고, 관련 서류를 준비하며, 자금세탁방지(AML)·고객확인(KYC) 의무를 포함한 내부 통제 체계를 재점검해야 한다.
서비스 제공 과정 전반에 걸친 보안 구조, 운영 프로세스, 정보 공개 관행 등도 이행 여부 점검 대상에 오른다.
2026년에 다가올 본격 변화
2026년 7월까지는 모든 CASP가 MiCA 요건을 전면 충족해야 한다. 각국 감독당국으로부터 적정 인가를 취득하는 것은 물론, 고도화된 보안 체계를 구축하고 소비자 보호를 최우선에 둔 내부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고객 자산과 회사 자금을 엄격히 분리 보관하는 구조, 데이터 보호와 사이버 보안 강화, 포괄적인 리스크 관리 정책 수립이 필수로 요구된다. 사실상 전통 금융기관에 준하는 수준의 거버넌스와 내부통제가 암호화폐 사업자에게까지 확장되는 셈이다.
MiCA의 ‘직격탄’을 맞을 암호화폐는
유럽의 MiCA는 대륙 내 암호화폐 판도를 재설계할 것으로 평가된다. EU 전역에 적용되는 첫 종합 법 체계인 만큼, 투자자 보호·금융 안정·시장 투명성 제고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가상자산별 체감 강도는 상당한 차이를 보일 전망이다.
그중에서도 스테이블코인이 규제의 최전선에 서 있다.
테더(USDT), 서클의 USDC, 바이낸스 USD(BUSD)처럼 법정통화에 연동된 토큰은 준비금과 공시 의무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요구를 받게 된다. 발행사는 발행 토큰 수와 동일한 가치를 담보하는 준비금을 항상 유지해야 하고, 정기적인 외부 감사를 통해 이를 입증해야 한다.
특히 준비금 투명성 논란이 반복돼 온 테더의 경우, 이런 규제 강화에 따른 구조조정 없이는 EU 시장에서 사실상 퇴출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로 일부 유럽 사업자들은 이미 USDT 서비스 축소 및 상장 폐지 절차에 착수했다.
거래소 자체 토큰도 예외가 아니다. 바이낸스 코인(BNB), 크립토닷컴의 CRO 등은 거래 수수료 할인과 생태계 내 활용성, 동시에 투자 수단이라는 ‘이중 기능’을 가진 만큼, MiCA 하에서 별도 범주의 암호자산으로 분류된다. 이들에 대해서는 리스크 요인, 사용처, 공급 구조를 포함한 상세 공시가 요구되며, 거래소는 투자자 대상 설명 책임을 부담하게 된다.
바이낸스 스마트 체인(BNB 체인) 생태계 핵심 자산인 BNB는 규제 대응에 따른 비용과 복잡성이 늘면서 단기 성장세가 다소 제약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프라이버시 코인인 모네로(XMR), 지캐시(ZEC) 등은 MiCA 체제에서 가장 큰 압력을 받을 자산으로 꼽힌다. MiCA는 자금세탁·테러자금 조달 방지를 위해 거래 추적 가능성과 투명성을 중시하는데, 익명성을 설계 목표로 하는 프라이버시 코인은 이러한 방향성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이 때문에 유럽 내 규제 준수를 중시하는 거래소들은 해당 자산을 상장 폐지할 가능성이 크고, 이는 곧 유동성과 시가총액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른바 ‘밈 코인’도 도마 위에 올랐다. 도지코인(DOGE), 시바이누(SHIB), 페페(PEPE) 등은 커뮤니티 열기와 밈 문화에 힘입어 단기간 급등을 반복해 왔지만, 실질적 사용처가 제한적이고 변동성이 큰 만큼 투자자 보호 관점에서 주시 대상이다. MiCA는 토큰의 실질적 효용과 내재 리스크, 발행·분배 구조에 대한 명확한 공시를 요구하기 때문에, 밈 코인이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상장 문턱이 높아지고, 개인 투자자의 투기 수요도 위축될 수 있다.
탈중앙화금융(DeFi) 관련 토큰 역시 불확실성의 영역에 있다. 유니스왑(UNI), 에이브(AAVE), 컴파운드(COMP) 등 거버넌스 토큰은 프로토콜 운영에 참여하는 권리를 부여하는 동시에, 중앙화 거래소를 통해 유통되는 투자 자산으로서 기능한다. MiCA가 DeFi를 직접 겨냥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들 토큰이 중앙화 플랫폼에서 제공되는 순간 일반 암호자산 규율 아래 편입될 여지가 크다.
탈중앙 거버넌스 구조에 대한 법적 해석이 아직 정립되지 않은 만큼, 향후 규제 명확성이 높아질 수도, 반대로 투자자들의 보수적 대응으로 유럽발 유동성이 축소될 수도 있다.
실물자산이나 증권을 기초로 하는 자산담보 토큰 역시 집중적인 검증을 받게 된다. 금·부동산 등 실물 자산을 토큰화한 상품은 MiCA의 자산참조토큰 규정을 적용받으며, 발행 플랫폼은 기초 자산 구성과 보관 방식, 평가 및 감사 결과를 상세히 공개해야 한다. 토큰화 증권의 경우 기존 금융 규제체계와의 정합성을 동시에 맞춰야 해, 인허가와 내부통제에 상당한 비용이 든다. 이로 인해 중소 발행사의 진입 장벽이 한층 높아질 수 있다.
NFT는 처음에는 MiCA의 직접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 것으로 여겨졌지만, 규정의 여지를 감안하면 간접적인 영향을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고가 디지털 아트나 컬렉터블을 여러 지분으로 쪼개 판매하는 ‘조각 NFT’는 투자·수익 배분 기능을 지니는 만큼, 일반 암호자산 규율 하에 편입될 수 있다는 관측이 있다. 이 경우 발행·중개 사업자는 강화된 공시와 규제 준수 의무를 떠안게 되며, 시장 진입과 운영 비용 증가로 인해 성장 속도가 둔화될 가능성도 있다. 비용 부담과 혁신 속도 저하다.
전반적으로 MiCA 도입은 투명성 강화와 투자자 보호라는 분명한 전환점을 제공하는 동시에, 이미 역동적인 유럽 암호화폐 시장에 자리 잡은 자산들에는 새로운 복잡성을 가져온다. 투명성과 규제 준수를 우선하는 코인·토큰은 수혜를 볼 가능성이 높지만, 프라이버시 코인, 투기적 밈 토큰, 일부 디파이(DeFi) 및 자산담보형 토큰은 까다로운 전환 과정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향후 수개월간의 적용 과정에서 MiCA가 유럽의 암호화폐 지형을 어떻게 재편하는지가 드러날 것이며, 이는 글로벌 암호화폐 규제 방향을 선도하는 선례가 될 수 있다.
보다 조화로운 글로벌 규제로 가는 길?
MiCA는 단순한 유럽 지역 법률을 넘어선다. 규정이 매우 세분화·정교하게 설계되어 있어, 다른 관할권에서도 바로 참고 가능한 틀로 기능할 수 있다. 이미 영국, 인도 등 여러 국가가 스테이블코인 규제 도입을 검토하는 상황에서, MiCA는 사실상 ‘글로벌 기준 규정’으로 확산될 잠재력을 지닌다. 포괄적인 규제 프레임워크인 만큼, 각국이 유사한 법·제도를 설계할 때 ‘청사진(blueprint)’ 역할을 할 수 있고, 이 때문에 MiCA는 전 세계 웹3 기업과 신규 암호화폐 프로젝트 모두가 주목해야 할 변수다.
MiCA가 유럽에서 연착륙에 성공할 경우, 이를 벤치마킹한 암호화폐 규제가 다른 지역에도 도입될 가능성이 크다. 궁극적으로는 디지털자산 시장 감시에 있어 국가 간 공조와 규제 정합성이 한층 강화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암호화폐 투자자와 사업자 입장에서는, 이러한 규제가 시장 심리와 자본 흐름에 직결되는 만큼 MiCA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암호화폐 기업과 트레이더 모두가 회피할 수 없는 전략적 과제가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