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현지시간) 미국 상원에서 디지털 자산 규제의 핵심 법안이었던 ‘디지털 자산 시장 명확성 법안(CLARITY Act)’이 사실상 문을 닫으면서, 가상자산 기업들은 지난 10년 내내 해왔던 것처럼 “어느 규제 당국이 언제 문을 두드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사업을 이어가야 하게 됐다. 관련 상원 표결은 60표 찬성에 실패했다. 어느 규제 기관이 결국 찾아올지.
트레이딩 인프라, 토큰화, 결제 분야 주요 경영진들은 이번 결과를 ‘전면적 후퇴’라기보다는 ‘분명한 타격’으로 규정하면서, 가장 날카로운 비용 부담은 이미 규제 안갯속에 적응한 크립토 네이티브 기업이 아니라, 여전히 명확한 규칙집을 기다리며 자본 투입을 미루고 있던 은행과 전통 금융기관에 돌아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상원은 이날 오후 2시 15분(미 동부시간) CLARITY 법안에 대한 토론 종결(클로처) 표결을 실시했다. 본회의 표결로 넘기기 위한 절차상 관문으로, 가결에는 60표가 필요했지만 이에 미치지 못했다.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인 존 튠(John Thune) 의원은 8월 8일 클로처 동의를 신청해 양측에 5주 동안 표 계산을 할 시간을 준 상태였다.
애초 셈법은 빠듯했다. 공화당이 53석을 쥐고 있는 만큼, 당론 이탈 없이 전원이 찬성한다 해도 최소 7명의 민주당 또는 무소속 이탈표가 필요했는데, 이마저도 확실하지 않았다. 존 코닌(John Cornyn) 상원의원은 표결 며칠 전까지도 찬반을 저울질했고, 수전 콜린스(Susan Collins) 의원은 지역 커뮤니티 은행에 미칠 영향에 우려를 표해온 인물 중 하나였다.
이 법안은 업계가 오랫동안 제기해온 ‘관할’ 문제를 정리하려는 시도였다.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가 ‘디지털 상품(digital commodities)’으로 분류되는 토큰의 현물(스팟) 거래 감독권을 가져가고, 증권거래위원회(SEC)는 투자계약 성격이 남아 있는 토큰에 대한 규제 권한을 유지하는 구조다. 여기에 발행·등록 요건, 거래소·브로커 기준, 디파이(DeFi) 취급 방식, 이해상충·윤리 규정 등이 패키지로 담겨 있었다.
이번 부결로 기존 규정이 폐기되는 것은 아니다. 하원은 이미 2025년에 유사 법안을 통과시켰고, 그 문안은 그대로 살아 있다. 다만 상원 논의가 사실상 ‘시간 창’ 안에서 멈춰섰다는 점이 문제다. 하원은 9월 21일·28일로 예정돼 있던 투표 주간을 취소했고, 9월 17일 이후 워싱턴을 떠날 것으로 예상된다. 중간선거 정국이 본격화되기 전까지 남은 입법일은 고작 나흘 안팎이다. 예측 시장에서는 해당 법안이 올해 안에 최종 법제화될 확률을 2월 약 90%에서 현재 18% 수준까지 낮춰 잡고 있다.
시장 반응은 냉담했다. 비트코인(BTC)은 전날 밤 한때 7만9,530달러에 근접했다가 표결을 앞두고 7만7,400달러 안팎으로 밀리며 약 3% 하락했고, 부결 소식이 전해지는 동안 추가 약세를 보였다.
“후퇴는 맞지만, 치명상은 아니다”
업계의 첫 평가는 공통된 단어에 모였다. ‘셋백(setback)’, 후퇴이지만 종말은 아니라는 인식이다.
티오렘(Theorem) 창업자이자 알제브라(Algebra) 공동창업자인 **블라디미르 티호미로프(Vladimir Tikhomirov)**는, 특히 남은 입법 일정이 촉박한 상황에서 법안이 제자리걸음을 하게 된 점을 “분명한 타격”으로 평가했다. 다만 이를 시장에 대한 심판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가격은 워싱턴의 개별 표결보다는 금리, 달러 유동성, 거시 환경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지적했다.
트레이스 파이낸스(Trace Finance) 공동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베르나르두 브리치스(Bernardo Brites)**는 더 직설적이다. 그는 “CLARITY 법안의 좌초는 업계에 큰 후퇴이지만 치명타는 아니다”며 “수년간 크립토 기업들은 법의 회색지대에서, ‘사후 규제 집행’ 중심의 즉흥적 접근에 노출돼 왔다. 혁신을 안내하기보다 처벌해온 셈인데, 불행하게도 그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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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치스는, 이 법안이 창업자와 개발자들이 줄곧 요구해온 ‘단 하나의 것’을 제공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바로 SEC와 CFTC의 관할 범위를 가르는 명확한 경계다. 이 구분이 없으면 디지털 상품은 여전히 ‘집 없는 자산’으로 남고, 스테이블코인 규율은 GENIUS 법안 아래 진전된 내용과 따로 노는 상태가 지속된다. 창업자들은 자금 조달이나 토큰 상장이 향후 소송으로 이어질지 여부를 계속 ‘짐작’에 기대야 한다.
그는 “창업자와 빌더 입장에서는 여전히 ‘규칙’이 아니라 ‘희망’에 기대 사업을 운영해야 한다는 뜻”이라며 “기관 시장의 거래량은 필요한 시점보다 더 오래 변두리에 머물 것이고, 기존 대형 금융사의 본격적인 참여라는 ‘다음 파도’도 더 멀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토큰화 자산 2차시장에 드러난 공백
티호미로프가 특히 우려하는 지점은 정치권 논의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시장의 한 구석이다. 바로 실물자산 토큰화(토큰화된 실물자산, RWA) 이후의 ‘2차시장 처리’ 문제다.
그는 “이들 자산이 발행된 뒤 어떻게 거래돼야 하는지, 유동성이 어떤 구조로 형성돼야 하는지, 투자자가 어떻게 포지션을 정리하고 출구를 찾을 수 있는지에 관한 규제 청사진은 여전히 전무하다”고 말했다.
규제당국이 다른 경로를 통해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은 분명히 했다. SEC, CFTC 등 각 기관이 의회와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규정을 만들 수는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가 경고하는 리스크는 ‘프레임워크’ 대신 ‘패치워크’가 만들어지는 시나리오다. 토큰화 기술과 발행은 빠르게 진전되는데, 이를 뒷받침할 준법 2차시장 인프라가 뒤따라오지 못하는 상황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의미다.
“완벽하지 않은 규제라도, 없는 것보단 낫다”
트리플에이(Triple-A) 최고경영자 **에릭 바르비에(Eric Barbier)**는, 법안 논의가 매번 개정 국면을 넘을 때마다 반복돼온 논리를 다시 꺼냈다.
그는 “오늘 표결에서 부결됐다고 해서 CLARITY 법안을 둘러싼 장단점 논쟁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라며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불완전한 규제가 무규제보다는 낫다’는 쪽에 서 있다”고 말했다.
그의 주장은 토큰 가격이 아니라 기업 리스크위원회의 의사결정 메커니즘에 방점이 찍혀 있다. “CLARITY 법안과 같은 규제 프레임워크는 대형 미국 기업과 기관에 ‘정식으로 디지털 자산 시장에 참여해도 된다’는 신뢰를 심어줄 수 있다. 그간 이들은 이 시장을 아예 회피하는 쪽을 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바르비에는 이미 법제화된 스테이블코인 관련 규정을 그 근거로 들었다. “GENIUS 법안 통과 이후 규제 가드레일이 생기자, 대기업을 중심으로 스테이블코인 결제 옵션 도입이 빨라졌고, 소비자 신뢰도도 높아지는 흐름이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번 표결을 업계 전반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내부의 ‘자국 과제’로 규정했다. 유럽연합(EU), 영국, 아랍에미리트(UAE), 싱가포르 등 주요 관할권은 규제 정합성을 높이기 위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고, 결국 제도권 자금의 본격 유입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발판을 쌓고 있다는 것이다. 미 의회의 진로와는 별개로 글로벌 판은 돌아가고 있다는 의미다.
브리치스 역시 다른 경로를 통해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다. 그는 “은행들은 미국의 입법 여부와 무관하게 스테이블코인을 채택하고, 블록체인 인프라는 현대 금융의 기본 레일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지연이 거듭될 때마다 미국은 이미 ‘기본값(default)’으로 쥐고 있는 선두 위치를 공고히 할 기회를 날리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현재는 기본값으로 쥐고 있는 우위.

